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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할매사진

은주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에 대하여.....

 

 

 

은주할머니는 올해 89세로 저와  8년째 동거와 다름없는 각세대주로 한지붕밑에 같이 살고있는

중이었습니다..

 

연제구 연산2동 재개발지역에 옆방에 살던 할머니로 재개발로 서로 쫒겨날 판국에, 저는 당시

다마스로 퀵서비스를 하고 할머니는 노름방에서 차심부름을 하는 알바로 외로웠던 시기에

이사를 하면서 " 니따라 갈란다~" 하고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1935년생인 할머니와 전 15살이 차이가 났으나 할머니는 성격이 매우 긍정적이고 항상 밝고

밉지 않은 외모에 음식솜씨도 괜찮았고 특히 노래를 참 잘 불러 상도 여러번 탓다고 합니다.

옛날노래뿐 아니라 판소리도 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거실벽을 

온통 거울로 장식해 놓고 춤추러 가지 말라고 판소리선생을 데려다 개인교습까지 시켰다고 하네요.

 

흠이라면 노름을 좋아 하고 노름판에 돈을 꾸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빠찡꼬장에서 살다시피하며 가끔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답니다. 

 

김해 진영이 고향인 할머니는 성씨가 김해 허(許)씨로 왕손이라며 자부심도 대단했으며

아버지가 지어주신 은주(恩珠)란 이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처음에 운선(雲仙)이라고

지었다가 여자이름으로 팔자가 세다며 다시 고쳐주었다고 합니다. 한글은 겨우 깨쳤으나

천수경을 줄줄 외우고 일본말도 할 줄아는 기억력이 좋은 할머니였습니다.

 

같이 살기 시작한 3년째 방바닥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동의의료원에서 고관절수술을 받았

습니다. 석달 열흘동안 입원하여 간병도 하였으며 같이 산지 5년째 되던해 제가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3년째 지금까지 돌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시니 집에만 있으려니 까깝하니 이삼일마다 차로 시원한 바닷가나 절을 찾아

다니며 저는 사진을 찍고 할미는 차안에서 틀러준 옛날노래를 들으며 기다리곤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청도 운문사에 휠체어를 타고 꼬빡꼬빡 참배하러 다녔습니다. 가족이라곤 

일본으로 시집간 딸이 있었으며 시집 간 후 가끔 전화는 있었으나 전혀 왕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오지못할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조폭의 우두머리로  요즘의 조폭이 아니라 김두한같은 

열혈청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우는

사람으로 시쳇말로 정의로운 깡패두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K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이기도 한

할아버지는 은주할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하였으며.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이야기 할 때

영화제목처럼  '조폭마누라'라고도 불렀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딸네집에서 생일 때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금정천에서 짝은 밝은 표정의 은주할머니 .

 

양산 통도사에서 초파일에 찍은 해맑은 미소의 은주할머니

 

다리가 불편하실 때 양산 황산공원 양귀비와 함께

 

 

 

 

 

2024년 10월23일, 새벽 3시30분경

 

은주할머니가 잠을 자다 깨면서 어지럽다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보통 2시 넘어

늦게 자는 편입니다. 할미는 임대한 케어복지용구 침대에서, 나는 아랫바닥에서...

 

그런데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깨신 것입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

저혈당이구나 하고 직감했습니다.  요즘들어 유난히도 식사량이 적다가 어제저녁

에는 제법 드시길래 인슈린주사를 14단위를 맞힌 것입니다. 아차~너무 높았던

모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부랴부랴 사이다 콜라를 찾아 먹였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싶어 박카스까지 드시게 했습니다. 저혈당증세에는 보통 땀을 많이 흘리

시는데 이날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지켜보다가 혈당계를 찾아서 혈당을 재보려다가 너무나 떠시길래 이게

아니구나싶어 119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5년전 방바닥에서 넘어져 고관절을 부르뜨릴 때와 두번째로 저혈당이 왔을 때와

비슷한 긴급상황이  또 벌어진 것입니다. 길게도 느껴졌던 15분쯤 후에 119가 도착

하여 상황을 기다리다 저혈당같다고 지난 경험을 얘기했더니 혈당계로 재어보더니

"혈당은 210으로 높은 편인데 혈압이 너무 낮네요~" 하며 들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지병으로 당뇨가 있으시니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가야 후속조치가 빠르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면 환자병력을 조사하기 위하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도착한 곳이 당뇨발병후 처음부터 여태까지 다니시던 좌천동 봉생

병원응급실이었습니다. 얼마후 혈압이 너무 낮다며 응급실로 들어간 후 아무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담당의사가 출근하는 새벽까지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CT촬영을 하자며 보호자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침6시쯤 되어서야 담당의사가 판정하기를 병명은 '패혈증쇼크'랍니다. 몸안에 나쁜

성분이 쌓여 피가 오염되었으며 신장이 제역활을 못하여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혈액투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혈액투석이란 말을 듣고 아찔했습니다.

 

혈액투석이란 당뇨환자들이 마지막단계에 쓰는 피를 순환시키는 위험한 처치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치료비가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독거

노인이며 기초수급자로 치료비 감당이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 나라에서 지원할

수 있는지 사회사업과에 문의해보라고 합니다. 다음날 진단서와 재원확인서를 가지고

갔더니 300만원까지 지원이 되니 걱정안하셔도 될꺼라고 합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대한민국 참좋은 나라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혈액투석을 시작한지 이틀째 되는날 응급실을 방문해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할머니의 빰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간호사에게 경과를 물으니 혈압 올리는

약을 처방하고 있는데도 혈압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의식이 있어서

코에 꽂은 노즐때문에 침대난간에 묶어놓은 양손을 까깝해 하며 풀어달라는 눈치였습니다.

간호사에게 항의를 하였더니 우리가 알아서 할터이니 상관말라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코에 꽂은 노즐 때문에 그러냐고 만약 잘못되면 책임질거냐고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하니

걱정말라고 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 10월 27일 오전 11시30분  10분간 허용된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허은주씨 보호자 되시는 분을 찾으며 잠시후에 하는말

"조금 전에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입원한지 불과 사흘만에 청천병력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앞이 캄캄하여 울컥하는

북받침을 참으며 응급실 안 할머니의 침대로 다가갔습니다. 틀니를 뺀 할머니의 함몰된

입술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앞을 가리며 할머니의 빰에 얼굴을 갖다대었습니다. 어제

본 촛점잃은 눈동자의 그 나약한 얼굴이 은주할머니의 마지막 생시모습이 될줄이야...

 

 

"미안해요~ 좀더 일찍 데리고 왔으면..." 투석시 코에 꽂은 노즐 때문에 묶여 있었던 손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머리를 떨구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은주

할머니가 나를 놓아주는구나~하는 고마움과 할머니의 굴레에서 이제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고관절수술 후 여태까지 불편해 하시던 생활에서 이제 벗어나 좋은 세상으로 가시게 될 거라는

기원과 함께 여러가지 착찹한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기초수급자인 동시에 무연고 독거노인으로 행정절차만 남았습니다. 우선 사망

진단서를 주민센터 복지담당자에게 제출하였더니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터이니 집에가

계시라고 합니다. 우선 국내에 연락할만한 연고자가 있는지 수배해 보고 다음에 나라에서 하는

공영장례전문회사에 맡기면 장례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이 갈꺼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사망

하면 장지는 대부분 영락공원이 아니면 정관에 있는 부산추모공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주민센터에서 문자로 연락이 왔습니다. 장례일이 10월31일 오전에 잡혔다며 장례협동

조합국화원에서 장례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국화원에 전화를 하였더니 할머니는 무연고자로

나라에서 시행하는 공영장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10월 31일 오전 9시 

 

아침 8시쯤 영락공원에 도착했는데 '부산광역시공영장례실' 이란 곳에 이미 빈소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양옆에도 빈소가 차려져 있어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빈소담당은 따로 있어 조문객을

따로 따로 조문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하얀 국화 가운데 영정사진 자리가 있었으나

무연고들이라 사진이 붙어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예쁘게 빈소를 차려놓을 줄은 몰랐

습니다. 공영장례국화원 담당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은주할머니도 만족하실 것 같았습니다. 

 

장례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예쁘게 꾸면진 빈소입니다.

 

공영장례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옆에서 향에 불도 붙여주시고 참배잔에

술도 따라주시며 친절히 도와주셨습니다.

 

영정사진은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으나 다행이 일본에 있는 따님과 연락이 되어 이메일로

받은 사진을 인화하여 옆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메일로 보낸 이 빈소와 아래에 있는 염습

사진을 보고 일본보다 더 예쁘다며 그리고 나중에 통화하며 눈물을 흘리며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예쁜 따님사진을 놓아드렸으니 은주할머니도 만족해 하실 것입니다.

 

 

옆빈소와 함께 여러분이 합동으로 공영장례를 치룰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무연고자에게 이렇게 예쁜 빈소와 함께 공영장례를 준비해준 부산광역시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가실 수 있도록 배려해준 부산광역시에 감사드립니다.

 

 

 

공영참배단(시민단체)과 함께 구청담당자께서도 오셔서 참배를 하고 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1,2 영락원으로 납골당입니다.

 

 

 

영락공원은 전국적으로도 투명하게 잘 운영되고 있는 유명한 장지로

타지에서도 선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깔끔한 영락공원은 유명하여 외지에서도 많이 온답니다.

 

반가운 건 흡연구역도 있네요. 화장동 앞에도 있던데요.

 

 

 

영락원(납골당) 가는길

 

 

 

영락정 올라가는길

 

 

 

염습( 殮襲 :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다음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 )장면입니다. 

깔끔하고 예쁜 염포네요.

 

 

입관장면입니다.

 

 

 

화장장면입니다.

 

 

 

 

수골실입니다.

 

여기에서 수골을 한뒤 영락정에 산골(뼈를 뿌림)하러 가게 됩니다.

 

 

시시각각 모니터로 알려줍니다. 화장시간은 대략 1시간 40분이라네요.

 

 

 

 

영락정

참배도 할 수 있게 예쁘게 지었습니다.

 

봉안함 속의 유골재를 뒷쪽 항아리속으로 넣어 뿌립니다.

산골이라고도 하네요. 제가 직접 유골을 항아리 속으로 넣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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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할머니께서 젊은 시절에 치시던 꽹가리가 유품으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동안 8년이상 제가 모셨던 허은주 할머니를

89세로 생을 마감하여 좋은 곳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조금 더 잘 모셨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다시는 볼 수 없지만 생시에

그 예쁜 모습을 가슴속에 추억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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